핀란드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가옥 <아이놀라 AINOLA> (2)

차이콥스키, 베에토벤과 마찬가지로 시벨리우스는 단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 이 곡을 작곡한 때는 30대 후반으로 개인적으로 그는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대성공을 거뒀던 ‘교향곡 2번’ 발표 당시 시작된 귀의 통증이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혔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터라 바이올린 협주곡의 진도는 더딘걸음을 면치못하고 있었다. 1903년 가을 협주곡이 완성되어 이듬해 2월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바이올린 협주곡은 처참히 실패했다. 아이놀라 공사가 막바지에 있던 때라 시벨리우스의 좌절감은 그 어느때보다 심했다. 하지만 1년여간 대대적으로 곡을 수정하여 1905년 여름 베를린 무대에 다시 곡을 올렸을 때 유럽 음악계는 그에게 열광했다. 이렇게 세계 5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의 하나인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 단조가 탄생되었다. 베를린에서의 대 성공을 거둔 직후 시벨리우스는 상당히 좋은 조건의 발매계약을 맺게 되었고 즉시 그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드디어 사우나를 지을 수 있게되었어!” ​아이놀라의 사우나 아이놀라의 사우나 전통적으로 핀란드에서는 집을 짓기 전에 먼저 공사현장에 사우나를 짓는다. 그만큼 사우나는 핀란드인들에게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놀라가 완성된 후 1년이 다 되기까지 아이놀라는 ‘사우나가 없는 집’이었다. 호숫가 수변이 아니라 내륙의 언덕 위에 자리한 아이놀라는 대가족의 사우나를 짓기에는 기술적 난관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부담을 주는 공사였다. 집을 짓느라 가계부채는 위험할 만큼 늘어났지만 음악적으로도 만족할만한 성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시벨리우스에게 베를린 공연은 그야말로 숨통을 트여주는 대전환이 되었다. 아이노는 시벨리우스가 외유 중인 사이 사우나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먼저 사우나에 물을 어떻게 공급해야할까가 가장 큰 문제였다. 땅을 깊이 파 우물을 만들었다. 물을 길어올릴 거중기와 사우나 내부로 물을 수송할 수 있는 통로 장치를 만들었다. 물을 길어 놀이터 균형대처럼 생긴 수로장치에 물을 부으면 사우나 안으로 물이 흘러들어가게 고안했다. 이제 아이놀라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성공 덕분에 ‘사우나 있는 집’, 온전한 가족의 집이 되었다. ​아이놀라의 부엌 핀란드 근대문화의 성지 뚜술라 아티스트 커뮤니티 핀란드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 근대 핀란드 미술의 거장 뻬까 할로넨 Pekka Halonen과 에로 예르네펠트 Eero Jarnefelt, 핀란드 근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에 12번이나 이름을 올렸던 유하니 아호 Juhani Aho. 한 명만 있어도 예술의 성지가 될 법한 뚜술라 호숫가 작은 시골마을에 네 명의 핀란드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지근거리에 커뮤니티를 형성해 함께 살았다. 이들은 모두 문화활동의 초중심지인 헬싱키를 떠나 창작 활동과 가족을 위해 고요하고 아름다운 전원을 찾아 나섰다. 헬싱키는 무대로서는 도움이 되었지만 예술가들의 예술적 창작 활동에는 방해가되는 요소들이 많았다. 특히 시벨리우스에게는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조용한 전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뚜술라호수 인근에 그렇게 원하던 전원 주택을 지었지만 그로인해 시벨리우스 가족은 아이들의 학교와 주요 생활권에서 고립되었다. 특히 시벨리우스는 연주활동을 위해 자주 집을 비웠기에 아이들 양육과 가사노동은 온전히 아이노에게 남겨지곤 했다. 다행히 시벨리우스를 지극히 아끼던 뚜술라 호수의 예술가 커뮤니티는 아이노에게 큰 의지와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예술가 남편들 못지않게 아내들 역시 배우,화가, 피아니스트, 디자이너 등 예술적 소양이 남달랐 뿐 아니라 교육수준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그들은 십시일반 힘을 모으기로 했다. 서로의 관심사도 비슷하고 지적, 정서적 공감대가 잘 형성되었던 이 아내들은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가족처럼 서로를 도왔다. 커뮤니티에서 독서클럽과 뜨개질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던 이 재주많은 여인들은 서로의 재능을 기부하여 열 명 남짓되는 또래의 자녀들에게 문학, 미술, 음악, 연기를 융합한 창의적 교육을 홈스쿨링했다. 절대적인 정적을 필요로하는 시벨리우스가 집에서 작곡을 하는 시간이면 그의 자녀들은 뻬까 할로넨의 집으로가서 피아노를 연습 했고 때로는 예르네펠트의 집으로 가서 노래나 연극연습을 했다. 20세기초나 21세기초나 핀란드 교육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연에서 배우는 수과학과 미술, 음악, 그리고 숲에서 또래 아이들과의 놀이를 통한 사회성, 가장 중요하게는 가정에서의 예절과 인성교육이 핀란드 교육의 근간이다. 21세기에는 컴퓨터 교육이 더해졌을 뿐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크게 없는 것 같다. ​뚜술라 호수 / 사진제공 : Visit Finland ​작곡자 시벨리우스, 아버지 시벨리우스 시벨리우스가 집에서 음악 작업을 하는 동안 아이놀라는 ‘침묵의 집’이 되어야했다. 딸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자녀에게 헌신하는 아버지였지만 아이놀라에는 위대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창작활동을 위한 엄격한 행동 규칙이 존재했다.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시벨리우스는 날씨와 상관없이 산책을 나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딸들은 이 시벨리우스의 산책시간이 악기를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었다. 아버지가 귀가하면 다시 아이놀라는 정적을 유지해야했다. 일면 독재자와 같이 엄격했던 아버지였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연을 지극히 사랑하는 시벨리우스는 자녀들에게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함께 놀아주기도 하는 자상한 면도 있었다. 아이놀라는 사랑으로 서로룰 채워주는 가족의 충전소임과 동시에 시벨리우스에게 있어서는 작곡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놀라의 건축공사비와 유지비를 감당해야하는 진지한 ‘근무환경' ’이기도 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러한 필요를 존중했고 위대한 작곡가로서의 아버지를 지극히 존경했다. 아이놀라를 가득 채우는 시벨리우스의 존재감은 특히 어린 딸들에게 든든한 ‘안정감 sense of security’을 주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애석하게도 아버지란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역할로 작아지고 심지어 최악의 경우 곳간을 채워주되 집안에서는 굳이 없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평일에는 직장일에 매몰되거나 주말은 비즈니스 골프와 접대 스케쥴로 자녀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다. 잠깐이라도 시간이 난다면 학업과 진로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대화가 서로의 감정만 상하는 논쟁으로 끝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물질적 필요를 넘어 존경과 사랑과 정서적 안정감이라는 무게감을 갖는 아버지의 존재감, 시벨리우스는 가정의 확실한 중심축이 되어주었다. ​아이놀라의 정원 기념비를 남길 수 있는 집 집은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물리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상상을 펼칠 수 있을 때 안식과 영감을 선사하는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집의 크기와 상상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고가의 아파트가 있어도 집안에서 마음 둘 곳이 없다면, 나의 상상력을 꽃피울 수 있는 한 평 작은 공간이 없다면 그 집은 그저 생명이 없는 콘크리트 구조물일 뿐이다. 작은 집이라도 내 마음이 성장하고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며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 한 켠이 있다면 그 집은 언젠가 내 인생에 기념비 monument를 남겨준다. 헬싱키 관광 명소 시벨리우스공원에 설치된 거대한 시벨리우스기념비 Sibelium Monument는 작고 조용한 시골마을 은방울꽃 언덕위 시벨리우스의 집 아이놀라에서 시작되었다. 시벨리우스의 아내 아이노에게는 아이놀라의 정원이, 시벨리우스에게는 나무 뿌리를 활용해 만든 의자에 앉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가는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소나무 그늘이 그랬다. 어떤 이에게는 작은 서재가, 어떤 이에게는 작은 책상 하나가, 또 어떤 이에게는 협소한 부엌이, 그리고 또 어떤 이에게는 바이올린을 연습할 수 있는 한 평 작은 방이 인생의 기념비를 세워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건조한 삶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집은 단순히 생존 현장에서 쌓인 피로감을 쏟아내는 곳 이상이어야 한다. 나에게 두근거리는 생기를 줄 수 있는, 나의 상상력을 흔들어 깨우고 일으켜 세워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당신의 집은 기념비를 남기는 거대한 주춧돌이다. ​​ 본 글은 Seoul Property Insight에 기고되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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