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칠라 농가 / 사진제공 : 프란칠라 과속 중인 삶 하루가 24시간에서 12시간으로 줄어든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시간이 빠르게 간다.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SNS 소식들, 광고, 뉴스, 그리고 여행지검색, 맛집검색은 야금야금 시간을 잡아먹고 쉼 없이 하루를 정신없이 뛰어다닌 듯하나 막상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 되었을 때 하루에 이루어 낸 것은 마땅히 없는 것 같은 허탈감이 든다. 화장실 갈 시간, 식사를 매 끼니 챙겨 먹을 시간도 부족하고, 당장 급한 전화나 메시지가 아니면 ‘밤에 봐야지’ 하고 넘기는 개인적인 연락들이 수 십 건이 되도록 바쁘게 달리나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을 갖는다. 오늘 할 일들이 마무리되지 못해 다음 날은 어제의 밀린 일로 시작하게 되고, 아무리 속도를 올려도 일의 양은 줄어들지 않고 읽지 못한 이메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말의 속도와 디지털 기계에 마치 들러붙은 듯한 손가락 움직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마음과 몸이 모두 분주하다. 그래도 부족하고 뒤처진 것 같아 잠을 줄이기 위해 카페인을 계속 주입한다.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도 머리 속에는 그 다음에 해야 할 일들 20여가지가 동시에 떠올라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모두가 다 급한 일들이라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 지 몰라 이 일 하다, 저 일도 급한 것 같아 저 일을 손대다가, 다시 또 다른 일이 긴급으로 밀려오면 그 일을 또 손대다가 그 어떤 일도 제대로 마무리 못한 체 시간만 흘러간다. 연말이 다가오면 이 분주함과 어수선함의 상태는 더 심각한 중증으로 악화된다. 우리가 하루를 달리는 속도는 고속도로 제한 속도 110km를 훨씬 넘기는 과속의 상태가 아닐까? 3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깃든 프란칠라 농가 / 사진제공 : 프란칠라 비르피 Virpi의 안전속도 나의 삶의 속도가 130km를 달리던 때, 핀란드 헬싱키에서 서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시골마을 해멘쿠로 (Hämeenkyrö)를 업무차 방문했다. 해멘쿠로는 인구 약 만 명 가량의 작은 도시다. 이 곳에 300년된 농장과 웰빙센터, 마을에서 가장 큰 식당이자 카페 <메리골드 (금잔화)>를 운영하는 프란칠라 오가닉 허브농장이 위치해 있다. 농장주이자 농업식물학자인 비르피 코르미에르 (Virpi Cormier)를 만났을 때 갑자기 나의 인생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녀의 화법은 학교 앞 안전속도 30km라고 해야할까. 깊은 바닷 속, 또는 미지의 신비한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깊은 목소리와 언어의 속도는 그 날도 ‘달릴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나의 출발선에 ‘정지' 신호를 걸었다. 느리나 명확하고 온화한 말투, 애정과 관심이 담겨 있는 차분한 시선, 깊은 내공이 보이나 가르치려들지 않는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존경심을 일으키는 아우라를 풍기는 비르피를 만난 날 ‘느림’의 힘을 보았다. 마치 대지의 여신을 눈 앞에 맞이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밖에 있는 사물들을 바라보기 보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 볼 것, 속도를 늦추어 볼 것,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것,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것을 이야기하는 비르피의 눈 빛에는 햇살의 따스함이 가득했다. 그녀에게는 세상을 추격하는 자가 아닌, 세상을 넘어서고 누리는 자의 초연함과 자연과 동행하는 겸허함이 있었다. 프란칠라가 운영하는 메리골드 카페 / 사진제공 : 프란칠라 핀란드 최초의 유기농인증 농장 비르피의 가문은 300년째 해멘쿠로에서 농장을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 말부터 그녀는 대대로 내려오던 농장의 일부에 약용식물을 재배하며 자연과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허브와 플로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핀란드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재배한 칼란듈라, 메리골드, 에크네시아, 예로우, 네틀 등 다양한 허브와 꽃들에 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 농장에서 채취.가공한 원료로 천연 뷰티.웰니스 제품을 생산해 프란칠라 (Frantsila) 라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냈다. 허브와 플로라에 있어서 핀란드 최고 권위자이자 구루인 비르피는 피토테라피스트 (phytotherapy 약용식물요법치료사)들에게 약용식물의 기초를 교육시키는 트레이너이기도 하다. 휴식과 회복을 찾기 위해 농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프란칠라 농장에서 스파와 명상 수업, 건강한 로컬 유기농 재료로 만든 비건식단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프란칠라 농장 / 사진제공: 프란칠라 “Human consumption must be a service to nature.” 여름 날 이른 아침이면 농가 맞은 편에 있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비르피의 정원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몸을 푸는 요가 클래스가 진행된다. 핀란드 전통 사우나로 피로를 푼 다음 날 아침, 오염이라고는 전혀 없는 맑은 공기와 청정한 호수, 꽃과 허브 향기 속에서의 아침 요가 후 신선한 채식 아침식사를 한다. 모든 일들이 매우 느리게 흘러간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원하다면 프란칠라 농장을 거닐며 다양한 약용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만져보고 향을 맡고 먹어볼 수도 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깊은 향의 오묘함, 초록에서 금빛 오렌지색으로 변화하는 색의 향연, 그리고 신선한 꽃과 허브를 하나 하나 손으로 만지며 수확할 때 느끼는 식물과의 교감은 분명 사람을 변화시키는 치유의 힘이 있다. T-Cell과 NK-Cell의 면역력을 활성화시키는 기능을 갖는 것으로 검증된 에키나시아, 소화력과 혈액 순환을 도울 뿐 아니라 항균, 항염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칼란듈라와 예로우.. 농장을 걷다보면 자연에는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많은 정신적, 육체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자연을 헤치는 인간의 행위는 곧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도 함께. 비르피는 "인간의 소비는 자연에 대한 서비스여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안다. 인간의 삶은 자연을 존중하며 함께 공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프란칠라 농장 오후가 되면 프란칠라에서 인근 마을과 외지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한 메리골드 카페와 작은 쇼룸의 역할을 하는 전시농장에 들려볼 수 있다. 프란칠라 제품 뿐 아니라 마을의 다른 농장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둘러보거나 구매할 수 도 있고 비건식단의 점심식사를 할 수 도 있다. 강가에 위치한 메리골드 카페는 해멘쿠로의 아름다운 ‘핫플’로 꽤 유명하다. 메리골드 카페 앞 플리마켓 / 사진제공 : 프란칠라 비르피와 프란칠라 농장의 이야기는 “All about being true to your self”에 관한 것이다. 속도를 늦추면 자신과 타인이 제대로 보인다. 잦은 분노와 짜증으로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일단 마음의 속도를 늦춰보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내 속도를 줄이면 편안해진다. 본 글은 Seoul Property Insight에 기고되었던 기사입니다. 원문은 링크 참조. https://seoulpi.io/article/89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