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s Anderson 1878년 9월 3일 핀란드의 키미토 Kimito 라는 작은 섬에서 아모스 앤더슨 Amos Anderson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청년이 되어 경제학을 공부한 후 보험회사에서 근무 경험을 쌓은 그는 보험, 경제 매거진과 신문사의 발행인이자 대표이사, 편집자 등 언론계의 주요인물로 성장하게된다. 또한 그는 13년 간 핀란드 신문발행인 협회의 회장 자리를 맡으며 언론 산업의 거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1차세계대전 이전부터 헬싱키 중심부에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정계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한 아모스 앤더슨은 40대 중반에 스웨덴정당 The Swedish People’s Party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대통령 선거인단으로도 활약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 역시 상당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은 문화적 정신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지혜를 일찌감치 터득한 아모스 앤더슨은 연극, 시각예술, 음악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으며 스웨덴극장 The Swedish Theater 의 이사회 의장, 핀란드 아트 소사이어티 The Finnish Art Society 이사회 이사, 투루크 대학 재단의 이사회 멤버와 의장으로 오랫동안 역임하며 학계와 문화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직위만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언론 매체의 편집장으로서 현장에서 오랫동안 실무경험을 갖추었으며, 실제로 연극대본을 쓰기도하고 연출도 하는 등 창작자로도 활동했다. 연극에 대한 그의 애정은 자연스럽게 헬싱키 중심부에 자리한 오래된 스웨덴 극장 The Swedish Theatre 의 보수작업 기금을 후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아모스 앤더슨은 중세 교회음악과 건축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투르크 대성당 복원과 보수에 기금을 후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핀란드 문화, 정치, 언론, 경제, 교육, 종교 모든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졌던 단 한사람을 지목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아모스 앤더슨을 가장 먼저 꼽겠다. 주목할 점은 그의 ’영향력’ 이란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헌’ 의 양을 말한다. 헬싱키 시에 소재한 아모스렉스 미술관 Amos Rex Art Museum / 사진: TUOMAS UUSHEIMO and JKMM Duty of Wealth 부 wealth란 사회의 다른 누군가로부터 잉여이익을 비대칭적으로 더 많이 취득한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이기에 자산을 더 많이 축적한 사람은 사회와 동료 시민들의 성장과 복리 증진에 기여할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상위 부유층이 이러한 의무를 인지하고 사회의 대다수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얻은 것의 일부를 다시 환원할 때 부자는 사회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다. 아모스 앤더슨은 이러한 의무를 일찌감치 깨달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현장에 대한 현실적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발전하는데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진정한 ’인플루언서’였다. 아모스렉스 미술관 내부 / 사진: Mika Huisman and JKMM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서는 공헌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아모스 앤더슨은 1940년 아트 소사이어티 협회 The Art Society Association 를 설립하여 사후 재산을 관리할 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핀란드 문화예술과 교육에 대한 그의 후원이 멈추지 않도록 영구적 공헌체계를 마련해 놓았다. 이 협회는 설립이래 현재까지 80년이 넘도록 예술, 언론, 교육 분야에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명예를 포장하기 위한 ‘보여주기식’의 후원이 아니라 뼛속부터 진정성 있게 문화와 교육을 통해 사회의 보편적 가치체계를 개선하고, 정신적 풍요와 의식의 선진화라는, 자신이 속하고 혜택을 누렸던 사회의 장기적 발전에 한 사람의 생사를 뛰어넘어 중단없이 기여할 수 있음을 삶으로 보여준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의 생애동안 수집된 400여점의 예술품들은 1965년부터 2017년 사이 헬싱키 시내에 소재한 아모스앤더슨 미술관에 소장, 전시되었다가 2018년 8월 헬싱키시와 아트소사이어티 협회의 민관공동투자로 설립된 헬싱키의 랜드마크, 아모스렉스 미술관 Amos Rex Art Musuem으로 이관되어 핀란드를 초월하여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아모스렉스 미술관 로비 / 사진: TUOMAS UUSHEIMO and JKMM 구겐하임 유치를 부결시키다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도시재생과 건축적 측면에서 뛰어난 건축물임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필자의 눈에 아모스렉스의 탄생 과정은 핀란드의 정신적 특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6년 헬싱키 시의회는 헬싱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하는 안건을 53대 32로 부결시켰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헬싱키가 생긴다면 미술관을 구경하러 올 관광객수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기대를 뒤엎는 시의원들의 결정은 국내외적으로 언론과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반대표를 던진 정치인들이 밝힌 부결의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은 해외 유명 미술관 브랜드를 수입한다고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겐하임 헬싱키 프로젝트 제안의 내면도 문제였다. 헬싱키에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헬싱키시는 항구 알짜배기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건축공비 약 1800억원을 부담할 뿐 아니라, 300억원 가량의 로열티를 구겐하임재단에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1800억원의 건축공사비 중 핀란드 중앙정부가 약 600억원 가량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구겐하임’ 명품 브랜드를 입기위해 100퍼센트 핀란드 시민들의 세금으로 막대한 재원을 충당해야하는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지극히 실용주의적이며 민족적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핀란드인들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으며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시의회는 결국 안건을 부결시켰다. 핀란드 국회 역시 이러한 성격의 미술관 건립에 중앙정부의 재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며 정부예산을 승인하지 않았다. 공공재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의 상세내용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정치인들이 투표로 가부간 결정을 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에 나올 수 있는 결론이었다. 아모스렉스의 독특한 그라운드 파사드 / 사진제공 : JKMM / Photo by Mika Huisman 로컬에 대한 긍지 구겐하임 헬싱키 프로젝트에 여론의 관심이 초집중되는 동안 아모스앤더슨 미술관은 조용히 미술관 확장계획을 추진했다. 핀란드 최대 건축디자인 사무소인 JKMM에게 설계를 맡긴 아모스앤더슨 미술관은 새로운 랜드마크 건축물을 신축하는 대신 1930년대 건설되었던 헬싱키 시내 구 시외버스 터미털 역사를 재생하기로 결정했다. 핀란드 시민의 세금은 한 푼도 투입되지 않는 순수 민간프로젝트이자 대형 쇼핑센터와 현대식 지하 버스터미널이 건축되면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던 근대문화건축물을 레노베이션하는 아모스앤더슨 미술관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 레노베이션을 하는동안 1930년대이후 오랫동안 개보수되는 과정에서 숨겨지고 덧입혀졌던 ‘근대의 색’들이 발견되자 시민과 디자이너와 로컬 미술관은 함께 기뻐하고 그 과거와 전통의 색과 감성을 현대로 다시 살려내는데 혼혈을 기울였다. 핀란드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로컬의 손과 노력이 만들어내는 재생프로젝트였기에 옛것에 대한 발견과 거듭남의 과정은 건축공사가 아닌 로컬 문화축제와 같은 여정이었다. 근대건축의 감성을 그대로 복원, 보존한 아모스렉스 미술관 내부 / 사진: TUOMAS UUSHEIMO and JKMM 디자인의 지속가능성 아모스렉스 미술관의 설계.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JKMM의 대표 아스모 약시 Asmo Jaaksi 는 “근대건축의 보존과 현대화는 디자인의 지속가능성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미래의 디자인에 있어 중요한 본질 중 하나가 이 지속가능성이며 향후 건축디자인은 이 아젠다에 의해 새로운 형태와 소재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디자인에서 핵심적 접근법은 단순화다. 복잡한 상태를 단순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눈에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켜 아예 물리적으로 사라지게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도록 감추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량이다. 핀란드인들은 본능적으로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불필요한 말을 아끼듯 디자인에서도 불필요한 가공과 장식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목적을 갖지 않는 것을 만들거나 구매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아모스렉스에는 이러한 핀란드인들의 속성과 디자인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러한 분명한 로컬성 locality을 함축하고 있는 아모스렉스가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를 이겨내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모스렉스 미술관 외관/ 사진: Mika Huisman and JKMM 한 민족, 한 국가의 혼을 담아내는 문화예술에는 관광객 수나 입장수입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이 근간에 있어야한다. 그러한 근본적인 국가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해외 유명 미술산업의 ‘브랜드’를 라이센싱해서 들여오자고 막대한 국가 재정, 즉 시민의 혈세를 함부로 조공하는 것은 문화의 세계화인지 문화의 식민화인지 깊이,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문화의 융합과 세계화는 우리 것을 밀어내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고한 우리의 것 위에 세워져야 한다. 아모스렉스 미술관 내부 / 사진: TUOMAS UUSHEIMO and JKMM본 글은 Seoul Property Insight에 기고되었던 기사입니다. 원문은 링크 참조https://seoulpi.io/article/67183